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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신다

손돌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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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신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화분을 바라봤다. 한 달 전에 심은 작은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울지 매일 확인했었다. 처음 일주일은 변화가 없어 조급한 마음에 흙을 파헤쳐 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보니 조그마한 새싹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잠든 시간,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던 순간에도 그 씨앗은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또 이르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가복음 4:26-27)

 

하나님의 일하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바로 응답을 기대한다. 기도를 드리면 천둥번개와 함께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내려와 명확한 답을 주시길 바란다. 그런 극적인 순간들이 분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신다. 마치 땅속에서 보이지 않게 자라는 씨앗처럼,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신다.

교회 성장 세미나에서 배운 내용들이 떠오른다. "폭발적인 부흥", "기적적인 치유", "극적인 변화" 같은 단어들로 가득했다. 그런 간증들을 들으며 나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신앙생활은 거창한 순간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종종 생각했다. '나는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긴 하는 걸까?'

 

수년 전, 대학 졸업 후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밤 무릎 꿇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명확한 표적, 꿈에서의 계시, 누군가의 예언적인 말씀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우연히 만난 선배의 조언, 우연히 눈에 띈 채용공고, 우연히 읽게 된 책의 한 구절... 이런 소소한 일들이 모여 지금의 내 길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니 그 모든 '우연'이 사실은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었음을 깨닫는다.

 

"또 이르시되 불 가운데 또는 강한 바람 가운데 지진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였다... 미세한 소리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셨다" (열왕기상 19:11-12, 의역)

 

엘리야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는 강력한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을 만난 결정적 순간은 불이나 지진 같은 극적인 현상 속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 가운데였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만큼 조용히,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일하신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런 '조용한 일하심'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요셉은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노예와 죄수로 지냈지만, 그 시간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모세는 40년간 광야에서 양을 치며 지냈지만, 그 시간이 지도자로 준비되는 과정이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에도 오랜 시간 도망자로 살았지만, 그 시간이 그의 믿음을 단련시켰다.

 

우리 시대는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한다. SNS에 글을 올리면 몇 분 내에 '좋아요'가 달리고,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읽음 표시가 뜬다. 온라인 쇼핑을 하면 다음날 배송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도 같은 속도의, 즉각적인 응답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다르다. 그분은 영원한 관점에서 일하시며, 때로는 몇 년, 몇 십 년이 지나야 그 의미가 드러나기도 한다.

 

교회에서 만난 한 자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녀는 20년간 비신자인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어떤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남편은 여전히 교회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심하게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남편은 처음으로 성경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아내의 믿음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 작은 호기심은 점차 관심으로, 그리고 마침내 신앙으로 자라났다. 20년의 시간 동안 보이지 않게 일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조용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 내면의 변화에서도 발견된다. 대부분의 영적 성장은 극적인 순간보다는 일상의 작은 결정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루하루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작은 순종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C.S. 루이스는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일어난다"고 말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매일 조금씩 자라지만 부모는 그 성장을 날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성장도 종종 우리 자신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일어난다.

 

살면서 가장 힘든 시간 중 하나는 '침묵의 계절'이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말씀을 읽어도 깨달음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은 때.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점차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더 세밀하게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얼마 전, 오랫동안 기도해온 문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어 낙심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일기장을 펼쳐 보게 되었다. 3년 전에 썼던 기도제목들과 고민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다른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페이지를 읽으며 갑자기 깨달았다. 그때 내가 간절히 기도했던 많은 부분들이 어느새 해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고 계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의 조용한 일하심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시험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증거, 즉각적인 응답, 극적인 변화를 원한다. 하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씨앗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씨앗이 자라는 과정은 대부분 땅속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뿌리가 먼저 내려가고, 줄기와 잎이 올라오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진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성장은 이미 오랜 시간 준비된 결과물이다.

하나님의 일하심도 그렇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분은 우리의 삶, 우리의 기도, 우리의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신다. 그 일하심을 눈으로 볼 수 없어도,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가자.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씨앗이 자라듯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 한 줄 묵상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들은 종종 가장 조용히 이루어진다.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 기도문

하나님, 종종 제 기도에 즉각적인 응답이 없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극적인 표적과 기적을 구하면서, 주님이 일상 속에서 조용히 역사하시는 방식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씨앗이 조용히 자라듯, 제 안에서도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당신의 시간표와 방식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세상의 소란한 소리보다 주님의 고요한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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