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기도한 지 오래인데, 아직도 기다리는 중
침대 옆 서랍장에는 몇 년 전부터 써온 기도 노트가 있다. 첫 페이지를 펼쳐보니 대학 졸업 즈음에 쓴 간절한 기도가 눈에 띈다. 취업, 재정, 관계, 영적 성장에 관한 기도들. 오늘 아침, 그 노트를 다시 펼치며 깨달았다. 그 기도 중 몇 개는 아직도 응답받지 못했다.
"주님, 제가 봉사할 수 있는 적합한 일자리를 주세요." "하나님, 이 관계를 치유해 주세요." "나를 깊은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주세요."
그 기도들을 쓴 지 5년이 흘렀다. 아직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가끔은 이런 의문이 든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신 걸까? 아니면 그냥 천장에 대고 혼잣말하는 건가?' 주변의 친구들은 기도 응답을 받았다며 간증을 나눈다. 한 친구는 기도한 지 한 달 만에 좋은 직장을 얻었고, 다른 친구는 기도하자마자 치유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주의 목전에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8)
성경을 읽다 보면 기다림은 신앙 여정의 필수 요소임을 발견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자녀에 대한 약속을 받고 25년을 기다렸다. 요셉은 꿈을 꾸고 그 성취까지 1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후 왕이 되기까지 약 15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심지어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30년을 나사렛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준비하셨다.
기다림이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라면, 왜 이렇게 견디기 힘든 걸까?
현대 사회는 기다림을 참지 못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음식은 배달앱으로 30분 안에 도착하고, 영화는 스트리밍으로 즉시 볼 수 있으며, 질문은 검색엔진으로 몇 초 만에 답을 얻는다. 우리는 '빠른 응답'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아직'이라는 대답은 참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그 자체로 깊은 의미가 있는 과정일 수 있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단순히 자녀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기다림 속에서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졌다.
요셉이 13년간 노예와 죄수로 지내는 동안, 그는 단순히 출세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애굽을 다스릴 지혜와 성품을 키워갔다. 다윗이 광야에서 도망 다니던 시간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훈련 기간이었다.
내 삶을 돌아보니, 기다림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3년 전 간절히 원했던 그 직장에 취직하지 못했을 때 낙심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직장은 내게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지금은 더 적합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치유를 기다렸던 그 관계는 여전히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인내와 용서, 무조건적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다.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누군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여전히 기도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 아직 응답받지 못한 기도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기다리려 한다. 단순히 응답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내게 가르치시는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어쩌면 기다림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우리의 영혼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금은 불 속에서 정제되듯, 우리의 믿음도 기다림 속에서 순수해진다. 기다림은 우리의 인내를 단련하고, 우리의 소망을 강화하며,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결과물이 아닌 하나님 자신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서 5:7)
농부는 씨를 뿌린 후 바로 수확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긴 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 침묵의 시간 동안에도 씨앗은 조용히 자라고 있다. 땅 밑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의 신비로운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급함보다는 평안함을 느낀다. 응답의 지연이 거절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침묵이 부재가 아님을 배웠기 때문이다. 농부처럼, 나는 때가 되면 열매가 맺힐 것을 믿으며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 자체가 내 영혼을 더 깊게 하고, 내 믿음을 더 강하게 하는 축복의 시간임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소중한 선물 중 하나일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성급한 해결책이 아닌,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배우게 된다. 기다림은 우리를 더 깊은 신뢰로 이끈다. 그리고 그 신뢰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핵심이다.
오늘도 나는 기도 노트에 새로운 기도를 적는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쉼표를 찍는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로. 기다림은 계속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기도의 진정한 목적일지도 모른다.
-한 줄 묵상
기다림은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라, 더 깊은 관계로의 초대다.
- 기도문
하나님, 기다림이 힘들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응답이 지연될 때 의심하고 낙심하는 연약한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이 기다림의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기다림 속에서도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신뢰합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주님의 완전한 계획 안에 있음을 믿게 하소서. 내가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는 모든 것들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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